DMZ 지뢰 폭발 사고, "가능성 매우 높다"에서 "확실하다"로…유엔사 조사 지연 논란 총정리

 2026년 DMZ 지뢰 폭발 사고, 유엔사 합동조사 지연 논란부터 강신철 국방장관의 "북한군 지뢰 확실" 발언까지 정리합니다. 한동훈 의원이 제기한 조사 지연·바디캠 의혹, 합참의 중간조사 결과, MDL 실제 거리, 4번째 지뢰 발견까지 확인된 사실과 남은 의혹을 구분합니다.

DMZ 지뢰 폭발 사고를 둘러싼 논란이 사고 원인 규명 문제를 넘어 유엔사 합동조사 지연 논란, 그리고 정부의 대북 대응 수위 문제로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군이 유엔군사령부의 신속한 현장조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군은 안전 확보와 부상 장병의 안정, 조사 준비가 필요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사고 발생 8일 만인 9월 29일, 상황은 한 단계 더 진전됐습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군 지뢰가 확실하다"고 밝혔고, 현장에서는 네 번째 지뢰까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무엇이 사실로 확인됐고, 무엇이 여전히 정치권의 주장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DMZ 지뢰 폭발 사고,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사고는 2026년 9월 21일 오전 10시 51분경 육군 25사단 관할 서부전선 DMZ에서 발생했습니다.

군에 따르면 당시 수색대대장을 포함한 장병 18명은 북한군이 MDL 일대에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 지역을 유엔사와 함께 조사하기 위해, 기존 수색로가 없는 구간에 새로운 수색로를 약 200m가량 개척하는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수십 년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수풀이 매우 우거진, 위험도가 높은 지형이었습니다.

MDL에 근접했다고 판단한 대대장이 철수를 결심하고 준비하던 중, 앞장서 있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인근에 있던 수색 요원이 쓰러진 공병 요원을 구하려 접근하는 과정에서 약 1분(정확히는 58초) 뒤 2차 폭발이 이어졌습니다. 이 2차 폭발로 구조에 나섰던 수색대대장이 좌측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고 우측 허벅지 등에 파편상을 당했으며, 인근에 서 있던 정보참모도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었습니다.

작전 병력은 모두 18명이었고, 이 가운데 수색대대장과 공병 요원 2명이 중상, 1명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군은 메디온 의무후송헬기 3대를 투입했고, 유엔사가 오전 11시 38분 DMZ 내 진입을 승인해 헬기가 11시 40분경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부상자들은 호이스트와 도보 후송을 거쳐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9월 28일 국방부 브리핑 기준으로 18명 중 15명은 퇴원했고, 중상자 2명과 경상자 1명은 입원 치료 중인 것으로 확인됩니다.


한동훈이 제기한 핵심 의혹은 "왜 바로 조사하지 않았나"

이번 논란에서 가장 큰 쟁점은 사고 자체만이 아니라 사고가 21일 발생했는데 왜 본격적인 현장조사는 27일에야 시작됐느냐는 것입니다.

한동훈 의원은 9월 24일부터 국방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9월 26일 국방부 청사 앞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제이비어 브런슨 유엔군사령관이 사고 당일인 21일 신속한 조사를 지시했고, 그 지시에 따라 22일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25사단을 방문해 관련 자료와 바디캠 영상, 부상자 인터뷰 공유, 현장 출입을 요청했는데 우리 군이 이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원래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29일로 예정됐던 합동조사가 국민적 의혹이 커지자 27일로 앞당겨졌다는 주장입니다. 한 의원은 이를 근거로 이재명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조사를 지연시켰다고 비판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27일 기자회견에서 "고의로 현장조사를 지연시켰다면 명백한 이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유엔사가 즉각적인 현장 출입 등을 요구했는데 우리 군이 거부했다"는 내용은 한동훈 의원 등 정치권이 공개한 주장이며, 군은 이 주장을 이미 공식적으로 반박한 상태입니다.


군이 밝힌 조사 일정, 그리고 유엔사 거부 주장에 대한 공식 반박

합참은 이 논란이 커지자 9월 25일 브리핑에서 "유엔사 군정위는 지난 22일 25사단을 방문해 폭발 상황과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우리 군과 합동 현장조사 관련 사안을 협조했다"며 "유엔사의 조사 요구에 우리 군이 시간을 끌었다는 취지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명시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즉 유엔사와의 협의 자체는 사고 초기부터 계속 이뤄졌다는 것이 군의 공식 입장입니다.

합참이 공개한 전체 조사 준비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9월 21일 지뢰 폭발 사고 발생

9월 22~23일 부상 장병 진료 및 안정, 유엔사 군정위 25사단 방문·협의

9월 24~25일 합참 현장조사 태스크포스(TF) 편성, 투입 시기 평가, 지휘·통제 및 통신 점검 등 준비

9월 26일 군과 유엔사가 합동으로 기동로 확보 및 작전환경 조사 등 예행연습 실시

9월 27일 1차 합동 현장조사 시작(폭발 지점 도달 못 함)

9월 28일 2차 현장조사(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 중간조사 결과 발표

9월 29일 3차 현장조사(추가 지뢰 발견), 국회 국방위 현안보고

군의 공식 설명은 조사를 방치한 것이 아니라 안전한 현장 진입을 위해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이 지역은 기존 수색로가 없는 데다, 지뢰 3~4발이 밀집해 있었는데도 지뢰탐지기로도 잡히지 않았을 만큼 위험도가 높았던 곳입니다.


'29일 조사'로 정해졌던 것은 사실…다만 경위는 다르다

한동훈 의원이 주장한 "당초 29일 조사 예정"이라는 부분은 합참의 후속 설명에서도 확인됩니다.

합참에 따르면 9월 22일 합참의장 주관 상황평가에서 당시 직무배제 상태였던 1군단장을 대신한 군단장 직무대리가 29일 현장 투입을 건의했고, 합참의장은 이를 승인하면서도 일정을 앞당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함께 지시했습니다. 이후 9월 25일 합참의장이 25사단을 방문했을 때 직무대리가 "제한 사항이 해소돼 더 일찍 들어갈 수 있다"고 건의해 일정이 27일로 앞당겨졌다는 것이 합참의 설명입니다.

따라서 '29일 투입안이 검토·승인됐다가 27일로 변경됐다'는 일정 자체는 군의 설명에서도 확인되는 사실입니다. 다만 군은 이 과정에 대해 "축소·은폐, 북한 눈치 보기, 상부 지시 같은 의혹은 일절 사실이 아니다"라며 지연 목적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안내 역할을 맡아야 할 수색중대장·공병중대장·공병 중사가 모두 입원 중이었고, 지휘 라인인 1군단장도 직무배제 상태였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27일·28일 조사에서도 폭발 지점 확인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9월 27일 첫 합동 현장조사에서는 조사팀 40여 명이 오전 9시부터 일몰 때까지 지뢰탐지기로 기동로를 정밀 탐색했지만, 미확인 지뢰지대의 위험성과 인원 피로도를 고려해 폭발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작전을 종료했습니다.

9월 28일 두 번째 조사에서는 유엔사 군정위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이 참여해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습니다. 이날 조사단은 폭발로 생긴 웅덩이 형태의 화구 2곳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장병들의 군장·방탄헬멧·지뢰화 등을 수거했습니다. 다만 시간 관계상 합동조사팀(TF) 차원의 정식 조사는 진행하지 못해 다음 날 재시행하기로 했습니다.

9월 29일 3차 현장조사(오전 8시 10분~낮 12시 10분)에서는 한국 측 31명과 유엔사 측 6명 등 37명이 투입돼, 한미 합동 조사가 오전 10시부터 11시 10분까지 실제로 진행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고 당일 수색로 개척작전에 참가했던 간부 일부도 현장에 다시 투입됐고, 2차 폭발 화구에서 약 1m 떨어진 곳에서 별도의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 1발이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폭발 예상 2m 지점 직후방 1m 지점에서 빗살무늬 네모난 물체를 식별"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 1발로 평가"라는 문구가 보고서에 기재돼 있다.

이 지뢰는 사고 당시 철수 중인 장병들이 목격했다고 진술한 지뢰와는 다른 별개의 지뢰로 확인돼, 사고 현장 일대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는 모두 4발로 늘어났습니다(폭발한 지뢰 2발 + 철수 중 목격됐다는 미폭발 지뢰 1발 + 29일 추가로 발견된 지뢰 1발).


사고 위치, 초기 발표보다 MDL에 더 가까웠다

이번 사건에서 눈여겨볼 부분 중 하나가 정확한 폭발 위치입니다.

한동훈 의원은 "군이 초반에 MDL 30~50m 남쪽에서 사고가 벌어졌다고 밝혀왔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MDL에 더 근접한 위치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후 9월 28일 합참 중간조사 결과에서 실제 위치가 구체적으로 공개됐습니다. 실제 폭발 지점은 군사분계선(MDL) 남쪽 약 10여m 지점이었고, 최근 북한군이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 지역에서도 약 10여m 떨어진 곳으로 확인됐습니다. 즉 한동훈 의원이 제기했던 "초기 발표보다 MDL에 더 가깝다"는 지적은 실제 조사 결과로도 뒷받침된 셈입니다.

군은 최초 위치 설명과 실제 위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 해당 지역이 통신 난청 지역이라 위치를 찍은 지점과 실제 지점 사이에 차이가 있었고, GPS 오차도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MDL 표지판이 촘촘하게 설치돼 있지 않아 남북 간, 그리고 유엔사와도 MDL 기준선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군은 현재 유엔사와 MDL 기준선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군 지뢰 판단, "가능성 매우 높다"에서 "확실하다"로 격상

사고 직후에는 군도 원인을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판단은 이틀 사이 급격히 구체화됐습니다.

9월 28일 중간조사 결과에서 합참 권대원 차장(현장조사 TF장)은 "북한군 목함지뢰 형태와 유사한 갈색의 수지 반보병지뢰로 추정된다"며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습니다. 합참이 제시한 근거는 네 가지입니다. 사고 지역에는 우리 군의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반면 2025년 9월 위성영상에서 북한군의 지뢰 매설 추정 지형 변화가 식별됐다는 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1차 감정에서 방탄헬멧·방탄조끼 등 3개 품목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지만 우리 군 지뢰의 특징인 철제 파편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점, 1차 폭발 지점에서 약 1m 떨어진 곳에서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로 추정되는 갈색의 네모난 미폭발 지뢰를 봤다는 작전 참여자의 진술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화구·화염 형태와 부상 양상이 우리 군 지뢰가 터졌을 때와 다르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이 지뢰는 목함지뢰와 형태는 같지만 재질이 나무가 아닌 플라스틱(수지)이며, 북한이 1969년부터 운용해온 것으로 알려진 종류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9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입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북한군 지뢰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예"라고 명확히 답변했습니다. 또한 "유실이 아니라 심은 것으로 보인다"는 질의에도 "유실은 아닌 것으로 본다"고 답했으며, 다만 "북한군이 2025년 9월에 설치한 지뢰인지, 그전부터 있던 지뢰 지대에 심어져 있던 지뢰인지는 좀 더 판단해봐야 한다"고 시점 문제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강 장관은 이날 "정전협정 위반은 명백하다"며 "북한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날 오후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폭발 지점 4m 반경에 지뢰 4발이 몰려 있었던 점을 근거로 "유실 가능성"을 재차 묻자, 강 장관은 "가능성이 적다"고 답하면서도 최근 직접 매설 여부에는 "국경선 요새화와 관련해 매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즉 "북한군 지뢰"라는 판단은 이제 군 최고 책임자 수준에서 "확실하다"까지 격상됐지만, 정확한 매설 시점과 고의성(아군을 직접 노린 것인지 여부)은 여전히 조사 중인 사안이라는 점은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실제로 합참 관계자도 "2015년 목함지뢰 도발은 장병들이 매일 드나드는 통문 앞뒤에 심어져 의도가 명확했지만, 이번 지역은 50여 년간 사실상 사람이 가지 않은 곳이라 아군 병력을 직접 노렸다고 보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한동훈이 제기한 '바디캠 영상' 문제는?

한동훈 의원은 군이 유엔사에 제공한 영상과 관련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유엔사가 바디캠 영상 제공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군이 제공한 것은 폭발 이후로 추정되는 매우 짧은 영상 하나 정도였으며, 사고 전체 상황을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합참은 9월 28일 브리핑에서 "폭발 당시 영상은 확보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다만 사고 현장에서 약 800m 떨어진 GP의 집음기에 약 58초 간격으로 유사한 폭발음 두 차례가 녹음됐고, 이는 작전 요원들의 "1분 정도 간격이었다"는 진술과도 일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즉 폭발 당시를 담은 영상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군의 설명을 통해 확인되는 셈이며, 이 경우 한동훈 의원이 제기한 "짧은 영상만 제공했다"는 주장과 "영상 자체가 없었다"는 군의 설명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한지는 유엔사와의 자료 공유 경위가 추가로 공개돼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군이 의도적으로 핵심 바디캠 영상을 감췄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재명 대통령, 사고 8일 만에 첫 공개 발언

이재명 대통령은 사고 발생 당일 SNS로 부상 장병들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낸 이후, 9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이 사안을 언급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군 당국은 유엔사와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며 "그 진상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안보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면서 "근거 없는 음모론을 부추겨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정치권에 당부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전날 합참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중간 평가를 내놓았는데도, 대통령이 이 발언에서 북한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대북 긴장을 고조시키기보다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려는 태도로 해석됩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사 일정과 관련해 "합참과 유엔사가 현장 지휘관들의 건의를 고려해 순전히 군사적 판단으로 계획하고 결정했다"고 설명하며,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일정 때문에 조사나 발표가 늦춰졌다는 일각의 의혹을 일축했습니다.


결국 핵심 쟁점은 이렇게 정리된다

이번 DMZ 지뢰 폭발 사고는 9월 29일 현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폭발한 지뢰가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인지입니다. 9월 28일 합참은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고, 9월 29일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확실하다"고 한 단계 더 명확히 답했습니다. 다만 이는 국과수 1차 감정과 현장 정황에 근거한 판단이며, 유엔사와의 공동평가를 거친 최종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지뢰가 언제, 어떤 경위로 그 위치에 존재하게 됐는지입니다. 강신철 장관은 "유실 가능성은 적다"며 매설 쪽에 무게를 뒀지만, 2025년 9월에 새로 매설된 것인지 1969년부터 있던 지뢰인지는 "좀 더 판단해봐야 한다"고 유보했습니다. 이 부분에 따라 북한의 고의성과 도발 성격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셋째, 현장조사가 29일에서 27일로 변경된 정확한 과정과 그 이전 협의 내용입니다. 군은 22일부터 유엔사와 계속 협의했고 "시간을 끌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 반박한 상태이며, 한동훈 의원은 유엔사의 더 빠른 현장 출입·자료 공유 요구를 군이 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부분은 여전히 상충됩니다.

넷째, 유엔사의 초기 요구 내용과 우리 군의 실제 대응 범위, 특히 바디캠 영상과 관련한 구체적인 제공 경위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과 '아직 확인할 부분'

정치적 공방이 강한 사안이므로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9월 21일 DMZ에서 두 차례 폭발이 있었고 장병 3명이 부상했다는 점, 폭발 지점이 MDL 남쪽 약 10여m라는 점(초기 발표된 '30~50m'보다 실제로는 MDL에 더 가까웠다는 점), 22일 합참의장 주관 상황평가에서 29일 투입안이 승인됐다가 25일 재평가를 거쳐 27일로 앞당겨졌다는 점, 27일부터 29일까지 단계적으로 현장조사가 진행돼 29일 조사에서 4번째 지뢰가 추가로 발견됐다는 점, 그리고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북한군 지뢰가 확실하다"고 답변하고 정전협정 위반과 상응 조치를 공식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반면 유엔사의 신속 조사 요구를 한국군이 거부했다는 구체적인 경위는 한동훈 의원 등이 제기한 주장이며, 합참은 이를 공식적으로 반박하고 있어 양측 설명이 상충되는 상태입니다. 제한된 바디캠 영상만 제공했다는 주장 역시 군이 "애초에 폭발 당시 영상 자체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설명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지 추가 검증이 필요합니다. 조사 지연의 이유가 '북한 눈치 보기'였다는 주장, 그리고 지뢰가 최근 고의로 매설됐다는 단정 역시 9월 29일 현재까지의 공개 자료만으로는 확정된 사실이 아닙니다.


앞으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최종 합동조사 결과

현재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권의 표현보다 군과 유엔사의 최종 합동조사 결과입니다. 특히 지뢰의 정확한 종류와 출처, 매설 시점(2025년 신규 매설인지 과거부터 있던 지뢰인지), 고의성 여부, 그리고 사고 초기 군과 유엔사 사이에 오간 조사 협의의 구체적인 경위가 핵심입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9월 29일 국회에서 "정전협정 위반은 명백하다"며 "북한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그것 또한 작전"이라며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유엔사와의 협조를 통한 투명한 진상 규명을 지시하면서도, 최종 조사 전까지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군 안전사고를 넘어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와 정부의 대북 대응 수위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사안입니다. 다만 2026년 9월 29일 현재 유엔사와의 공동평가를 포함한 최종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매설 시점과 고의성까지 포함한 사건의 전체 성격을 확정적으로 규정하기에는 여전히 확인해야 할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최종 조사에서 매설 시점과 고의성이 어떻게 규정되는지, 그리고 유엔사의 초기 조사 요구와 우리 군의 대응 과정에 대한 상충된 설명이 추가로 어떻게 정리되는지가 이번 논란의 핵심으로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 이 글은 2026년 9월 29일 현재 공개된 국방부·합참 발표,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보고,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언론 보도, 한동훈 의원 등 정치권의 공개 기자회견 내용을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최종 합동조사 결과에 따라 내용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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